
"신이시여, 연명은 죄악인가요?"
이 한 문장을 읽는 순간 마음이 멈췄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저의 속죄는 죽음입니까?"
짧은 글이지만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 당연히 선이라고 믿는다.
병원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고,
가족은 마지막 순간까지 손을 놓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사랑이다.
하지만 이 글은 우리에게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진다.
'살아 있는 것이 정말 선일까?'
몸보다 먼저 무너지는 것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산소 마스크를 의지한 채 겨우 숨을 이어가는 사람은
자신의 고통보다 가족들의 눈물을 먼저 본다.
'내가 살아 있어서 저 사람들이 힘든 것은 아닐까.'
그 순간 생명은 축복이 아니라 죄책감으로 변한다.
그래서 이 글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이 만들어 낸 죄책감을 이야기한다.
철학에서는 오래전부터 비슷한 질문을 던져 왔다.
칸트는 인간의 생명은 어떤 상황에서도 존엄성을 잃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대로 공리주의는 모두의 고통을 줄이는 것이 선이라면 다른 선택도 고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존주의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삶의 의미는 누가 결정하는가?"
결국 철학은 정답을 주지 않는다.
질문만 남긴다.
살아 있는 것이 삶인가.
숨을 쉬는 것이 삶인가.
아니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삶인가.
나는 이 글에서 가장 슬펐던 문장이 마지막 문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상처를 주는 것은 죄악입니다. 맞나요?"
라는 문장이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
하지만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죄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가족은 그 사람이 살아 있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우는 것이다.
사랑은 고통을 없애 주지 않는다.
대신 그 고통을 함께 견디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의 질문에 답하지 못하겠다.
연명이 죄인지도,
죽음이 속죄인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누군가의 생명은 결코 죄가 될 수 없다.
우리가 끝내 붙잡는 것은 숨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이고,
사랑했던 기억이며,
놓을 수 없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글은 '죽음'에 대한 글이 아니라,
사랑이 얼마나 무거운 감정인지를 묻는 글이었는지도 모른다.
※ 인용 문구는 유튜브 'R's PlayList' 영상 「신이시여, 연명은 죄악인가요?」 설명란의 일부를 인용했으며, 본문은 해당 글을 읽고 작성한 개인적인 철학적 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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